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땅트렌드:TREND/으땅농구

(NBA:WIN NOW 승부사) 팻 라일리 단장 스토리 -1부-

by 이으땅 2020. 10. 6.

80년대 LA레이커스의 전성기를 이끈 '팻 라일리' 감독 (출처:위키백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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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프로농구 NBA '마이애미 히트' 팀의 단장 '팻 라일리'가 유명해진 것은, 1980년대 LA레이커스 시절 득점 및 패싱+운영능력이 뛰어난 장신 포인트가드 '매직 존슨'을 리더로 내세우고 SHOW-TIME LAKERS라는 별칭을 얻어내며, 감독 재임기간 동안 무려 4번의 우승을 차지하면서 였을 겁니다. 3번 연속 우승을 차지한다는 의미의, Three-Peat 이란 단어를 만들어내기도 했고요. (물론, 3연속 우승은 결국 실패했습니다만) 영광의 세월을 뒤로 하고, 매직 존슨의 충격의 은퇴에 1년 앞서서, 먼저 감독 자리에서 물러났었습니다. 그 이후, 방송사 TNT 해설자로 활동하다가....다시 큰 꿈을 안고, NBA에 복귀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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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가 먼저 선택한 팀은 NBA 동부 최대 규모의 프랜차이즈라는 '뉴욕 닉스'. 당시, 팀에는 패트릭 유잉, 찰스 오클리, 모리스 칙스, 마크 잭슨, 존 스탁스 등이 있었습니다. 한 시즌을 보낸 후, 그가 영입한 선수는 자비에르 맥다니엘과 무명의 앤서니 메이슨. 이 선수들과 함께 끈끈하면서도 지독한 수비농구를 창조하며(실점 70~80점만을 허용하는 숨막히는 압박디펜스농구 추구), 이전해에 플레이오프 1라운드 탈락한 팀을 플레이오프 2라운드까지 진출시켰고, 그 2라운드도 그 해의 우승팀, 시카고 불스와 7차전까지 가는 접전이었습니다. '패트릭 유잉'을 중심으로 한 강력한 수비팀을 구축한 팻 라일리였습니다만, 그 이듬해에도 시카고 불스에게 덜미를 잡히면서, 플레이오프에서 탈락합니다. (모두가 알다시피 '마이클 조던'과 '스카티 피펜'이 이끄는 시카고 불스는 90년대 동부 최고의 넘사벽 팀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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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0년대 초에는 뉴욕 닉스에서 간판센터 패트릭 유잉을 주축으로 저돌적인 선수들을 발굴하여 수비농구를 펼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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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버지의 죽음으로 조던이 은퇴하자, 동부의 최대강호로 부상한 '뉴욕 닉스'는 결국, 파이널까지 진출합니다만, 이번에 팻 라일리의 앞길을 가로막은것은 휴스턴 로켓츠의 드림쉐이커 올스타 센터 '하킴 올라주원'.....그렇게 우승을 빼앗기고, 이듬해에는 인디애나 페이서스 '레지 밀러'의 밀러타임에 물먹고 2라운드에서 탈락하게 됩니다.. 이제 지쳤다면서, 은퇴를 한 팻 라일리.....(나는 이제 지쳤어요...ㄸㅂ)

여기서, 전격적인 사건이 터지는데, GM과 감독을 겸하고, 상당한 거액을 받고, 팻 라일리가 마이애미 히트로 이적한 것입니다. 뉴욕의 팬들은 서슴치 않고, 팻 라일리를 배신자로 불렀고(뉴욕의 지역포스트 및 언론은 대단히 시끄러운 집단들입니다.), 그 이후, 몇 시즌 동안 닉스 vs 히트의 라이벌리가 이어졌는데, NBA팬들의 즐거운 볼거리중 하나였죠.(참고로 1999년 플레이오프 1차전에서 1위로 올라온 마이애미는 8위 뉴욕의 '앨런 휴스턴'으로부터 결승득점을 얻어맞아 1차전에서 탈락, 업셋 희생양이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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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 한번의 도전, 그는 장기계약 거액조건으로 마이애미 히트로 이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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팻 라일리는 이적하자마자, 샬럿 호넷츠의 떠오르는 센터, '알론조 모닝'을 전격 영입하고, 시즌 중에 올스타급 포인트 가드, '팀 하더웨이'를 영입합니다. 뛰어난 센터와 뛰어난 가드를 영입하면서, 힛트에서 다시 우승을 노리기 위한, 전초작업을 전개하죠. 이때만 해도, 막 복귀했던(1995) 마이클 조던이 자신의 앞을 가로막을 것이라고는 상상도 못했겠죠. (당시, 핫 이슈가 농구를 1년이나 쉰 조던이 그 이듬해에 어떤 모습을 보여줄 것인가 하는것이 대단한 관심거리였고, 꽤 많은 의견이...예전만한 모습은 보이기 어렵지 않을까...였습니다)

하지만, 히트에서의 첫 플레이오프를 물먹인 것은 조던의 '시카고 불스'였습니다. (라일리로서는 조던이 상당히 원망스러웠을듯) 1라운드에서 3-0으로 패배했습니다.

본격적인 전력보강에 나선 팻 라일리는....자말 매쉬번, 댄 말리 등을 영입하고, 젊은 백업으로 보션 레너드, PJ 브라운, 커트 토마스를 영입하고, 브루스 보웬을 NBA에 끌어들였습니다. 하지만, 역부족...이번에도 동부 파이널에서 조던에게 덜미를 잡힙니다.

그 이듬해에 애틀란틱 디비전 1위를 차지하면서, 우승의 희망을 드높였습니다만, 닉스를 배반한 댓가였을까요? 1라운드에서 뉴욕 닉스에게 패배하죠. 시즌이 끝나고, 마이클 조던은 은퇴했습니다. 팻 라일리로서는 큰 부담이 사라진 것이죠. 1999년 선수 파업사태가 났고, 분위기는 어수선했습니다만, 팻 라일리는 포기하지 않았습니다.

선수파업이 끝나고 단축시즌이 펼쳐졌지만(50경기), 히트는 당당히 정규시즌 1번 시드를 잡았고, 8번 시드는 뉴욕 닉스였습니다만, 앞에 괄호에서도 언급했듯, 정규시즌 1위의 마이애미 히트는 충격의 1라운드 탈락을 하게 됩니다. 이 충격때문이었을까요? 그 이듬해에도, 마이애미 히트는 뉴욕 닉스에게 동부 플레이오프 2라운드에서 덜미를 잡혔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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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위 마이애미는 8위 뉴욕에게, 결승 득점을 앨런 휴스턴으로부터 허용하고 충격의 1라운드 탈락을 한다.(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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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프시즌에 들어가자, 팻 라일리는 초강수를 꺼내듭니다. PJ브라운과 매쉬번을 보내고, 에디 존스와 브라이언 그랜트를 영입하면서, 모닝-그랜트-메이슨-EJ-티미 의 뉴욕 닉스 시절을 연상케 하는 강력한 디펜스팀을 구축하죠. 거의 드림팀에 근접하는 맴버였다는 말도 나왔고....아무튼, 우승을 위한 팻 라일리의 집념을 잘 말해주는 사건이었습니다.

그런데, 아이러니 하게도, 플레이오프에서 힛트의 발목을 잡은것은 다름아닌 떠나보낸 선수들이 안착한, 샬럿 호넷츠....캠벨-PJ브라운-매쉬번-웨슬리-배론 데이비스로 이어지는 라인업이 1라운드에서 히트를 제압해 버린 것입니다. 주전 센터 알론조 모닝이 자신을 뽑아줬지만, 떠나왔던 샬럿이라는 점에서 묘한 인과관계를 느끼게 해준 사건이었죠.

결국, 다시 힘이 빠져버린, 팻 라일리는 2년 연속 플레이오프 진출조차 실패해버리고, 스탠 밴 건디에게 감독자리를 넘겨준 후, 팀을 더 강하게 하는데만 집중하기 시작합니다. 그 덕분인지, 캐런 버틀러를 비롯한 젊고 좋은 선수들을 뽑았고, 2003년도에는 드웨인 웨이드도 뽑으면서, 라마 오덤도 영입하면서, 루키 웨이드- 2년차 버틀러-오덤 라인업으로 플레이오프 2라운드까지 진출하게 되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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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3년, 황금 드래프트 해에, 마이애미는 하위권의 아픔을 딛고 특급신인 드웨인 웨이드를 뽑으며 팀 명예회복을 예고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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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서 라일리는 또 한번 큰 결심을 합니다. 바로, 버틀러와 오덤을 넘겨주면서, 샤킬 오닐을 영입한 것이죠. 오닐+웨이드는....자바+매직, 유잉+스탁스, 모닝+티미의 뒤를 이은, 좋은 팀을 만들기 위해서는 좋은 센터와 좋은 가드를 먼저 구하라...라는 격언을 따른, 팻 라일리의 4번째 프로젝트였습니다.

하지만, 첫 해에는 디펜딩 챔피언, 디트로이트 피스톤스에게 동부 파이널에세 패배하면서, 다시금 팻 라일리의 프로젝트는 실패만 하는가....라는 느낌을 주게 되었습니다.

또 한번, 큰 결심을 하는 팻 라일리....감독자리로 다시 내려왔죠. 앤트완 워커, 제이슨 윌리엄스, 게리 패이튼, 제임스 포지등 좋은 선수들을 트레이드를 통해 영입했으며, 유도니스 하슬림은 앤서니 메이슨, 보션 레너드, 브루스 보웬을 이은 팻 라일리의 또 하나의 특징, '진흙에서 진주찾기' 의 진가가 발휘된 선택이라는 것이 알려지게 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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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0년대 레이커스에 이어, 2000년대 승부수를 띄운 구단 운영으로 마이애미 히트 첫 우승을 차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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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국, 수많은 징크스와 도전을 뛰어넘고, 우승을 차지했습니다. 샤킬 오닐, 알론조 모닝, 게리 패이튼, 앤트완 워커, 제이슨 윌리엄스 등의 감격은 말할것도 없습니다만, 무려 17년동안 실패를 거듭했다가, 18년만에 목적을 달성한 팻 라일리의 끈기와 도전정신은....17전 18기라는 엄청난 결과와 함께, 한두번 실패했다고 주저앉아버리는 보통사람들에게 교훈을 안겨주는 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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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부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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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 글은 mania.kr/g2/bbs/board.php?bo_table=nbatalk&wr_id=262642 게시글에서 발췌한 내용을 바탕으로 재구성한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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